일본의 소설가, 고바야시 야스미의 '메르헨 죽이기 시리즈'의 첫 번째인 <앨리스 죽이기>를 읽었습니다. '메르헨'은 독일어로 동화를 뜻하는데요. '앨리스'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래서인지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대화도 정말 '이상하게' 느껴지고, 전개도 꽤 충격적입니다. 잔혹동화를 좋아하고,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신다면 읽어볼 만합니다.
목차
1. 줄거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도마뱀 빌과 암호를 정하는 잡담을 나누다 미친 모자 장수와 3월 토끼에게 험프티 덤프티가 추락사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대학원생 아리는 단지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지만, 동기 이모리와의 대화를 통해 이모리가 꿈에서 나온 도마뱀 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모리는 최근 연구원 오지 다마오가 죽은 이유가 험프티 덤프티로서 죽었기 때문이라면서, 이상한 나라와 지구가 연결되었다고 한다.
한편 이상한 나라의 흰토끼는 앨리스가 험프티 덤프티를 밀어 죽였다고 증언하고, 앨리스는 자신이 꿈속에서 범인으로 몰려 사형당하지 않기 위해 진범을 찾아 나선다.
2. 평가
앨리스가 사형을 당하면 현실 세계의 너도 죽어.
꿈과 현실 세계가 연결되었다고 설정한 점이 신선합니다. 특히 익숙한 동화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소재로 했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이 그런대로 머리로 잘 그려지는 편입니다. 저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자주 본 덕분에, 주인공들의 행동이 그럭저럭 이해됐습니다. 다만 '이상한 나라'의 등장인물들은 정상이 아니라서, 쓸데없는 대화를 자주 합니다. 글 초반부에 나오는 도마뱀 빌과 앨리스의 대화가 그런데요. 주인공들의 헛소리에 불호를 표현하는 분들도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현실과 꿈이 번갈아 나오는 식으로 전개됩니다. 이상한 나라에서는 살인이 일어나도 과학적인 수사가 불가능하고, 현실에서는 그 살인이 사고사로 바뀌기 때문에 범인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상한 나라와 지구에서의 기억은 연결되지만, 성격과 외모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구에서는 똑똑한 이모리가, 이상한 나라에서는 멍청한 도마뱀이 되어서 답답한 모습을 보이고는 합니다.
"앨리스,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아뇨, 죽었어요. 앨리스는." 구리스가와 아리는 조용히 말했다.
핵심 반전은 2가지였는데요. 먼저 범인은 '메리 앤', '히로야마 도시코' 부교수였습니다. 흰토끼는 앨리스와 메리 앤을 구별하지 못하는 모습이 초반부터 나왔는데, 바로 이것이 메리 앤이 범인임을 알려주는 단서였습니다. 아리는 빌의 다잉 메시지 '공작부인은 범인이 아니다'를 보고 공작부인을 사칭한 '히로야마'가 범인임을 알아챘습니다.
두 번째 반전은 앨리스가 사실은 아리가 아니라, 아리가 키우던 햄스터, '햄순이'였다는 것입니다. 아리는 사실 이상한 나라의 '겨울잠쥐'가 되어서 계속 앨리스의 주머니 속에 있었는데요. 덕분에 아리는 지구에서 앨리스 행세를 하며 범인에 대한 정보를 캘 수 있었고, '메리 앤'을 잡는 데 성공합니다.
'이상한 나라'가 사실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고, 지구가 현실이 아니라 '붉은 왕'이 꾸는 꿈이라는 내용도 인상적입니다. '붉은 왕' 역시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인물이라는데, <거울나라의 앨리스>를 읽지 않아서 정확히 어떤 인물인지는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마지막 메리 앤이 카드 병정들에게 목이 잘리는 모습의 묘사는 꽤 충격적입니다. 사형 집행을 한번도 해보지 않아 카드 병정들이 톱과 칼로 서툴게 메리 앤의 목을 자르는데, 목뼈가 꽤 두꺼워 메리 앤이 계속해서 고통스러워하며 비명을 지릅니다. 굉장히 건조한 문체로 사형 장면을 묘사하는데, 범인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통쾌하기도 하고 조금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세계관으로 쓰여진 미스터리/추리 소설을 한번 보고 싶다면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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